단결정의 슬립 현상은 다결정의 슬립 현상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칼날 전위, 나사 전위 및 혼합 전위는 슬립면과 슬립 방향으로 가해진 전단 응력에 따라 움직인다. 작용 응력이 인장 응력이나 압축 응력이라 할지라도 응력 방향의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향에서 전단 응력 성분이 존재하는데, 이를 가리켜 분해 전단 응력이라고 한다. 분해 전단 응력의 크기는 작용 응력뿐만 아니라 슬립계의 방향 각도에 따라 변한다. 단결정 금속에는 많은 슬립계가 있는데, 각 슬립계는 응력축과 각도가 다르므로 각기 다른 분해 전단 응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다른 슬립계에 비해서 분해 전단 응력이 가장 큰 하나의 계가 나타난다.
단결정에서 가장 큰 분해 전단 응력을 갖는 슬립계의 분해 전단 응력이 어느 특정 한곗값에 도달하면 슬립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를 임계 분해 전단 응력이라 한다. 임계 분해 전단 응력은 슬립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 전단 응력이며, 항복이 일어나는 때를 결정하는 재료 성질이다. 분해 전단 응력이 임계 분해 전단 응력과 같을 때 단결정의 소성변형이 일어난다.
단결정 시편에 인장력을 가하면 슬립은 가장 적절한 각도를 갖는 슬립면과 방향을 따라 시편의 길이를 따른 여러 위치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변형은 단결정 표면에 조그만 층을 만들고, 이 층들은 서로 평행하며, 시편 원주 둘레에 루프를 형성한다. 각각의 층들은 수많은 전위들이 동일한 슬립면을 움직인 결과이다. 이러한 층들은 연마한 단결정의 표면에 선으로 나타나며, 이를 슬립선이라고 부른다.
단결정을 계속 잡아당기면, 슬립선의 수와 슬립층의 폭은 점점 증가한다. 또한 FCC 및 BCC 금속에서는 인장축을 따라 적절한 각도를 이루는 2차 슬립계에서도 슬립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슬립계가 거의 없는 HCP 결정 재료에서는 가장 적절한 슬립계에서도 응력축이 슬립 방향에 수직이거나 슬립면에 수직이면, 임계 분해 전단 응력은 0이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각도로 슬립계가 놓이면, 결정 재료는 소성변형이 일어나지 못한 채 파괴된다.
다결정 재료의 변형과 슬립 현상은 다소 복잡하다. 많은 결정립의 결정 방향이 마구 뒤섞여 있으며, 슬립 방향은 결정립에 따라 다르다. 각 결정립에 있어, 전위는 앞에서 정의한 바와같이 가장 적절한 방향을 갖는 슬립계를 따라 움직인다. 소성 변형시킨 다결정 구리 시편의 표면을 보면 슬립선들이 잘 나타나 있으며, 평행한 2쌍의 슬립선들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결정립에서 2개의 슬립계가 작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여러 결정립들의 슬립선이 다르게 정렬된 것에서 결정립들의 결정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결정 시편에서 큰 소성변형이 일어나면 슬립에 의해 각각의 결정립이 상당히 뒤틀리는데, 변형 동안에 결정립계는 벌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결정립계의 기계적 결합을 유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결정립은 근처의 결정립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구속받는다. 큰 소성변형으로 결정립이 뒤틀린 모양을 보면, 변형 전에 결정립들은 등방형으로, 즉 모든 방향으로 크기가 거의 같음을 볼 수 있다. 다결정 금속은 단결정 금속보다 더 강하다. 즉, 슬립이나 이를 수반하는 항복을 일으키는 데에 더 큰 응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다결정 금속에 변형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결정립에 상당한 기하학적 구속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한 결정립이 슬립이 잘 일어나는 방향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적절한 방향에 위치하지 못한 근처의 결정립에서 슬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변형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작용 응력이 필요하다.
금속 재료의 소성변형은 슬립 이외에 기계적 쌍정의 형성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즉, 전단 응력에 의해 원자의 변위가 일어나, 한 면을 중심으로 맞은 편의 원자들이 거울상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쌍정의 형성 방식에서 쌍정 지역 내에서의 변위 크기는 쌍정면으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한다. 또한 쌍정은 결정 구조에 따라 정해진 결정면에서 특정 방향으로 일어난다. BCC 금속의 쌍정면은 (112), 쌍정 방향은 [111]이다. 전단 응력을 받고 있는 단결정의 슬립 변형과 쌍정 변형을 비교해 보면 쌍정에 의한 전단 변형은 매우 균일하다. 이 두 변형 과정은 여러 관점에서 서로 다른데, 슬립에서는 변형 전이나 후에도 슬립면의 위쪽과 아래쪽에 위치한 결정 원자의 방향이 서로 같은 반면에, 쌍정 변형이 일어난 후에는 쌍정면을 가로질러 원자의 방향이 재조정된다. 또한 슬립에서는 원자 간 거리의 배수로 변형이 진행되지만, 쌍정 변형에서의 원자 변위는 원자 간 거리보다 작다. 기계적 쌍정은 BCC 및 HCP 결정구조를 갖는 금속에서 나타나며, 슬립 과정이 제약받는 저온이나 하중 속도가 매우 빠른 경우에 일어난다. 쌍정에 의한 소성 변형량은 슬립에 의한 변형량에 비해 작다. 그러나 쌍정 변형의 중요한 역할은 쌍정에 의한 원자 방향의 재조정으로, 새로운 슬립계가 응력축에 적절히 놓이도록 하여 슬립 변형이 다시 일어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높은 강도와 적절한 연성 및 인성을 갖는 합금을 설계하는 것이 금속 기술자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합금의 강도가 커질수록 연성은 감소한다. 여러 가지의 경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특정 용도에 요구되는 기계적 특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합금을 선정한다. 강화 기구는 전위와 재료의 기계적 거동 사이의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거시적 소성변형에는 수많은 전위들의 움직임이 관련되므로, 금속의 소성 변형성이란 전위를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경도와 강도는 소성변형의 용이성과 관련이 있으므로, 전위의 기동성을 감소시킴으로써 기계적 강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반면에, 전위의 움직임이 자유로울수록 변형이 잘 일어나는 동시에 더 무르고 약해진다. 따라서 모든 강화 기구는 실질적으로 전위의 움직임을 방해할수록 재료가 더 단단하고 강해진다는 원리에 기본을 두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단일상을 갖는 합금의 결정립 미세화, 고용체 합금 및 변형 경화에 의한 경화 기구에 관해서 서술해 보도록 하자.
재료과학
단결정의 슬립, 다결정 재료의 소성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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